지역뉴스 in 모라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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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 모라투아 지역뉴스 1 ]
모라투아 YMCA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Children Class>학생들이 콜롬보에서 열리는 전국 스카우트 캠프에 참가했다. 올해로 43회째를 맞는 이 캠프는 전국 각지의 2000여 명의 스카우트 단원이 참가하여 25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되었다. ‘Every Child has the Right’이라는 모토아래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북돋는 다양한 활동들이 준비되었다.
모라투아 YMCA의 스카우트 단원들은 전국 YMCA연합 캠프site에서 각지에서 온 YMCA 스카우트 단원들과 생활하였다. 스리랑카는 싱할라족과 타밀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나뉘어있고 종교 또한 다양하다. 이 캠프는 다양한 지역의 YMCA가 참가한 만큼 다양한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 캠프를 통해서 민족과 종교를 뛰어넘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캠프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인 금요일에 캠핑장을 방문하였다. 먼저 캠프의 규모에 놀랐다. 다양한 단체의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모인 만큼 색다른 캠프site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그 캠프site들의 입구에서부터 울타리, 텐트, 식당, 옷걸이 등등 모든 것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물론 요리와 빨래, 청소 등도 모두 아이들의 몫이다. 한국에서 보아왔던, 혹은 참가했던 캠프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보다 자발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모라투아 YMCA의 아이들은 열 살이 조금 넘은 어린 아이들이다. <Children Class>에서는 수줍음 많은 꼬맹이들이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 능숙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직접 점심을 만들어주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저녁 때는 캠프파이어가 있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동그랗게 앉아 서로가 준비한 장기자랑을 내보였다. 우리 아이들은 타밀족의 노래를 불렀다. (모라투아 Y의 아이들은 모두 싱할라족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스리랑카는 민족과 종교가 다양한 나라이다. 그로 인한 정치적인 문제들도 발생하고 있고. 하지만 이 곳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다. 기사의 마지막 줄에 ‘민족과 종교를 뛰어넘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것도 어른들이 관점에서, 그리고 외국인인 나의 관점에서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문제점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스리랑카에서의 첫번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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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스리랑카의 에세이
새로운 경험& 부담감
스리랑카까지의 여정은 길고도 길었다. 홍콩을 지나 싱가폴을 지나 스리랑카까지 한국 시간 오전10:15에 출발해 현지시각으로 오후10:50 도착. 난생처음 장거리 비행을 해본 나로서는 힘든 시간이었다. 도착해 현지스텝을 만나서 YMCA호텔로 이동을 해서 윤혜령간사님께 전화를 했는데 왜 이렇게 반갑던지 벌써부터 한국이 그리워 지기 시작을 했다. ‘힘내야지 힘내자 양형아’ 라며 속으로 다짐하면서 스리랑카에서의 첫날 밤은 지나갔다.
둘째날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조금 있고 나서야 스리랑카에 온 것이 생각이 났다. 아침식사를 하고 스리랑카YMCA로 이동하는데 역시나 믿겨지지 않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YMCA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우리가 일할 곳인 모라투와로 이동을 하였다. 현지 스텝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내가 지낼 곳을 보니 5달간의 나의 생활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둘째날이 지나갔다.
이튿날 우리는 회의를 했지만 역시 언어라는 장벽이 너무나 힘들었다. 영어로 통역을 해주시는 분이 있긴 했지만 영어는 우리도 그렇게 능숙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의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 이 곳 YMCA스텝들도 우리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요구해서 프로그램을 짜라고 하였던 것이 기억이 난다.
토요일엔 드디어 우리가 처음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현지스텝의 요구에 우리는 많이 당황을 했고 실수를 연발해서 창피함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를 위한 환영파티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에게 공연을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창피함을 달래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에 현지교회를 가고 고아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잠시 만난 후에 숙소로 돌아가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 파티를 가게 되었는데 생각도 못한 규모였다. 입구에서는 현지스텝이 맞이해주었고 입구에서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꽃을 나눠주면서 환대를 받으니 마음 속엔 부담감이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100명 정도 되는 규모의 사람들과 설치되어있는 밴드의 악기들을 보며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내가 과연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내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책임감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작된 파티에서 스리랑카의 전통 춤을 보고 노래를 듣고 우리는 한국의 노래와 라온아띠 축제 때 보여주었던 내 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마치 클럽같이 밴드는 계속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 멤버들도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춤을 추기 시작하였는데 나는 그곳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춤을 추기 시작하였고,
숨이 턱 끝까지 밀려왔지만 계속 춤을 추었다. 국내교육에서 댄스 테라피에 했던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단지 나의 즐거움을 쫓아 춤을 췄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에는 현지 선교사님을 만나 통역과 스리랑카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듣기를 요청하고 주 스리랑카 한국 대사관을 방문해 대사님의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캠프에 참가를 하였다. 보이스카웃 같은 단체들이 모인 2000명 규모의 캠프에서는 참 새로운을 만나게 되었다. 모두가 아이들이 만들었다고는 생각도 못한 구조물들은 말이 안 나올 정도의 규모였다. 곳곳에 위치한 각자의 단체의 구역을 돌며 여러 군데를 체험하였다. 그 곳은 모든 것이 만들어져 있었다. 단체의 구역을 표시하기 위한 성 같은 구조물, 식당 심지어 건조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여러 군데를 체험하고 마지막 피날레인 캠프파이어를 참가해 각 단체가 준비한 노래, 꽁트 같은 것을 보고 역시 이번에도 우리는 노래를 하면서 공연을 하였다. 끝난 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 왔다.
나는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일본을 일주일 가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 곳에서 보내는 지금의 이주가 너무나도 새롭고 두렵다. 새로운 집, 새로운 일터, 새로운 가족,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흥분되게 만든다.
5개월의 기간 동안 스리랑카에서 나를 찾고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고 싶다. 내가 원하는 일인 사회복지사의 의미를 이곳에서 찾아 가고 인간 김양형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08.08.30 스리랑카에서
Hi! every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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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태국팀과 베트남팀의 소식은 아주 잘 보았어요 :D
요기 필리핀은 정말 매력적인 나라인것 같아요. 아직 일주일이 채 안되었지만 벌써 피노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 느낌.. 나쁘지 않아요 ^-^
YMCA 직원분들 너무나 다들 친절하시고 따뜻하답니다.
필리핀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구요 ^-^
3일동안 마닐라에서 함께 지내다가 필리핀팀은 각자의 지역으로 흩어졌어요~
여기 바기오는 마닐라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도시라 팀원들 모두 재밌어해요. 다바오팀에서 문자가 왔는데 그곳도 너무나 멋진 곳이라네요 ^^*
아직은 적응기간이라 그런지 거의 관광을 위주로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지만, 이제 곧 프로그램에 착수하게 될 그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답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또 사진 올리겠습니다! bye ~
PS. 첫번째 사진은 PMA라는 필리핀 사관학교에서 그리고 두번째 사진은 마닐라 Y에서 :)
여기는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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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많이도 궁금합니다.
저희 태국 람푼과 프레팀은 당분간 10월달까지는 이런저런 교육을 받으며 생활을 하다가
11월부터 각자 람푼과 프레지역의 학교와 마을에서 활동할 듯 합니다.
지금은 적응기간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설명듣고 하루하루 정신이 없네요.
우려했던 날씨는 일단 대구보다 덜 더워서 좋습니다.
현지 스탭분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저희는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