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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동티모르]
[Editorial - Thursday, 7 February 2008
Jobs, not rations, key to independence
This week is a week of mixed progress in Timor-Leste.
Monday the Untied Nations Police handed over three neighborhood police posts to the National Police of Timor-Leste as a sign of trust and faith in our local police. If PNTL can manage this without a spike in criminal activity, this may be taken as a positivefirst step in a long goodbye to foreign peace keepers. If this move proves successful, no one will regret it.
Another step toward normalcy-though this one much more dubious-is the reduction of rations for the internally displaced people(IDPs). Three years ago only widows, veterans and victims of natural disasters got regular government handouts. Then, in th last two years tens of thousands of people suddenly demanded the government's aid. And surely there are many tens of thousands of these people who are truly needy and there are few among us so callous as to deny a genuinely needy person his rations. However many registered names, possibly up to a third, are fraudulent. That is to say, tens of thousands of people who should not be getting rice, oil, beans and tents. And there are few among us who would accept this.
But can the government really slash food rations by half? Who here is so well off as to not need some extra beans or rice? The price of rice is rising in Dili as well as in Oecusse (where locals say it's already reached $40 a bag) following flooding in Thailand and Vietnam. And now, after our own recent spate of natural disasters in the west, it seems likely times will get worse before they get better. It seems clear that, even if one is not a legitimate IDP, one could still use the government's handouts.
But of course, a handout based economy is a fraudulent economy. Moreover, there is a certain shame to constant dependence that we cannot tolerate. If we do not produce, if we do not create or strive to progress and move forward then we will become a begging bowl society. We struggled for decades against colonialist oppressors and high odds to determine our own path and that path must be one of self reliance.
Work and sweat in Timor are hot, hard, bitter things, but the fruits of one's labor are still sweeter than free handouts from foreigners. Much like PNTL with UNPol, we can take lessons from the foreigners but we cannot depend on them.
What the government should do then is offer greater work opportunities to everyone-not just the IDPs. The government should take the money it spends on rice, oil, etc and spend it on work programs across the nation. Anyone who needs work should be able to find it. There is a vast potential for work here. Until every last piece of litter is picked up, until the seafront sparkles from sand rather than Aqua bottles, until every last hole is patched and all the roads paved and until all the public buildings are painted and the parks maintained only then will we believe that there is no more work to be had in Timor.
We will be independent only when most able bodied people have means to support themselves and their families. So we ask the government to remember, jobs are the key, After the rations have been taken away and the food prices go up and the bellies get hungry, what then? If there are no jobs to be had, what then?
2008.2.7 사설
배급이 아닌 일자리가 독립의 관건이다.
이번 주는 동티모르에 복합적인 발전의 한주이다.
월요일에는, UN경찰이 3개 지역의 경찰서를 동티모를 경찰에게 우리 경찰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표시로 양도했다. 만약 동티모르 경찰이 특별한 범죄행위 없이 잘 운영한다면, 이것은 외국의 평화지킴이들에 대한 긴 이별의 긍정적인 첫 걸음으로 여겨질 것이다. 만약 이런 움직임이 성공적으로 입증된다면, 아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를 향한 다른 한 걸음은-비록 이것은 더 의심스럽긴 하지만- 국내의 난민들에 대한 배급의 감소이다. 3년 전에는 오직 미망인, 퇴역 군인, 자연 재해의 피해자들만이 정부의 보조(금)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지난 2년간, 수만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정부의 원조를 요구했다. 그리고 분명히 정말로 빈곤한 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 중에는 정말로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배급을 반대할 만큼 냉정한 사람들이 없다. 그러나 등록된 사람들 중의 많게는 1/3정도까지가 거짓이다. 즉, 쌀과 기름과 콩과 천막을 받지 말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쌀과 기름과 콩과 천막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과연 식량배급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까? 여기의 누가 약간의 콩과 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부유할까? 태국과 베트남의 홍수 때문에 오이쿠시 지역(한 가마니에 이미 $40에 달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딜리도 쌀 값이 오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서부(?)에서 자연 재해가 일어나고, 그들이 회복되기 전에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어느 사람이 합법적인 난민이 아닐지라도, 그가 정부의 원조를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경제에 기반을 둔 원조는 허울 경제일 뿐이다. 더욱이, 지속되는 의존에 대한 참을수 없는 수치심이 있다. 만약 우리가 생산하지 않거나, 발전하고 더욱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걸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수십년간 식민 통치자들과 우리의 독립의 길에 대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저항했다.
티모르에서의 일과 땀은 덥고, 힘들고, 쓰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결실은 여전히 외국의 무상 원조보다 달다. 동티모르 경찰과 유엔 경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외국인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은 일자리를 단지 난민들이 아닌 모든이들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는 쌀, 기름 등등에 쓰이는 돈을 거두어서 전국에 걸친 일자리 프로그램에 써야 한다. 일자리를 원하는 이는 누구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는 거대한 노동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쓰레기 한 조각이 주워 질 때까지, 해안이 아쿠아 물병(*현지 생수 브랜드)보다는 모래에서 빛날 때까지, 모든 구멍을 메꾸어 모든 도로가 포장될 때까지, 모든 공공 건물이 페인트칠 되고 모든 공원이 유지될 때까지. 그제서야 우리는 티모르에 더 이상의 할 일이 없다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유능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을 지원할 수단을 갖게 될 때가 돼서야 독립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에게 일자리가 관건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 배급이 끝나고, 식량값이 오르고, 배가 고파지면, 그 다음엔? 만약 일자리가 없다면, 그러면?
* 본 해석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밑줄 친 부분은 해석이 심히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에세이-3]산타끄루즈 묘지를 다녀와서 by 양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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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008 , Sunday , timor Leste Dili , ANJU
민족의 대 명절, 추석. 오전시간에 산따끄루스 답사가 있던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시바시 간사님께서 일정을 잡았을때부터 막연한 기대를 하였다. 왠 크리스마스 마을인가 하고 괜한 기대를 한 것이다. 하지만 답사 전 약간의 오리엔테이션과 동영상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산따끄루스 대학살’사건은 1991년 10월 28일 인도네시아 군인과 경찰이 ‘고메즈’라는 청년을 붙잡아 저항세력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40여명의 청년을 연행한 사건이다. 11월 2일, 무덤에 꽃을 놓는 동티모르 관습에 따라 수 천 명의 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고메스의 유해가 안장된 산따끄루스 묘지를 향해 행진했다. 그때 인도네시아군의 무차별 발포로 273명이 사망했고, 250여명이 실종됐으며, 37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사건으로 동티모르가 단번에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동티모르의 참혹한 인권상황이 국제문제로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그럴수록 인도네시아 정부는 강압적인 통치로 침공 1년 동안 동티모르 저항군과 주민 10만명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영상속의 총을 맞고 쓰러져있는 아저씨와 가족인냥 보이는 남자가 그를 안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안고 있는 모습에서 나도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한국전쟁이 생각 났다. 겪어보지 않은 일인데도 그렇게 마음이 아픈데 이 사람들을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이 사건이 100년전 50년전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들의 유족들이 아직 이 사건을 기억 하고 있고 가슴속에 묻었을 것이다. 라온아띠에 선발되고 동티모르로 확정이 되고 집에서 보는 올림픽 개막식에는 동티모르 선수들이 나오고 있었었다. 해설자는 동티모르.. 참 슬픈 나라라며 소개를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슬픈나라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그 전에 많은 지식을 쌓지 못한 봉사단원으로써의 내 마음가짐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묘지로 가는길.. 산따끄루즈 바로 앞에서는 인도네시아 군인들의 묘지가 있었다. 이 무슨 기묘한 현실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죽인자와 죽은자들의 무덤이 쌍방을 향하여 있고 인도네시아 군들의 묘지는 정갈하게.. 산따끄루즈 묘지는 한자리가 비좁다 하고 틈을 두지 않고 묘지가 빽빽히 있었다. 이시바시 간사님은 “결국은 모두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고 어쨌든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산타 끄루스 묘지에는 한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무자비 하게 죽은 자들의 묘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우리나라 였다면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화장을 했을텐데 라는 생각과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독립을 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군의 묘지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에서 이런 동티모르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시바시 간사님께서는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총 하나로 목숨을 잃었을 생각을 하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가슴이 아팠다. 나는 오늘부터 ‘띠모르레스떼 탄생’책을 열심히 읽어 보아야 겠다. 다른 친구들에게 동티모르는 어떤 나라냐고 물어보면 친구들이 바로 이해 할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식민지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겠다.
지역뉴스 in 모라투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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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저희 스리랑카 팀은 다들 잘~지내고 있답니다..가슴 아픈 얘기도 들려오고,,마음이 펺치만은 않네요ㅜㅜ다들 건강하고,,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두 번째 지역뉴스 올립니다.늦게 올리네요^^;;ㅎ
두번째 뉴스클리핑입니다.(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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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주입니다ㅅ< 회원가입을하려했는데 저는왜 14세 미만이라고뜨는거죠 ㅋㅋㅋㅋ ㅠ혜썽이 아이디를 빌려서 뉴스올려요.1) Baguio day program and activities
Baguio celebrates its 99th charter day anniversary tomorrow, Monday. September1 and at the same time launches the year-long schedule of activities for the centennial anniversary next year....
매 년 9월 1일 , 바기오에서는 바기오의 탄생을 기념하여 바기오 데이를 만들어 공휴일로 지정 했습니다. 이번이 벌써 99번째라니, 내년이면 100주년. 와우!!! 내년까지 못 있어서 아쉬워요ㅠ(내년 2월엔 아주 큰 플라워페스티벌도있는데ㅠㅠㅠ) 이날은 일단 쉬는 날 이니 좋았고 ^^각 종 퍼레이드와 행사를 진행하니 볼거리도 있어서 좋고. 날씨도 좋았고.타이밍을 놓쳐서 퍼레이드를 보지 못했는데 한국 꼬꼬마들이 한복을 입고 동참하기도 했다고 해요 . 필리핀은 축제가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 지역의 탄생한 날도 정해서 기념하는 게 신기했어요.
2) YMCA-KB FRIENDS OF ASIAN PEACE
Volunteer korean college students affillated with Ansan YMCA. from left:Joo, Eun, Lucy ,Hesty and Lily, last week visited The Baguio Repoter office at the YMCA building. The Korean students are in Baguio to promote peace and global citizenship. Also, to later on assist women's group in Tuding, Itogon, Benguet on Women Empowerment and development program...
THE BAGUIO REPORTER 라는 신문에 저희 사진과 기사가 실렸답니다 !(물론 아는사람들만 아는 YMCA신문이지만요 ㅋㅋ)
여기서의 의견이라면 왜 우리는 명찰과 신문에 졸지에 안산 YMCA소속이 되었으며 주목적이되어야 할 여성역량강화보다 글로벌시티즌 쉽이 더 강하게 어필되고있는지가^^....
커뮤니티에 빠른 시일 내에 가고싶어요 .
[에세이_1] 람푼에서의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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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푼에서의 에세이_ 0908
캠프의 첫째 날은 언제나 제게 피곤함을 안겨줍니다. ^^
지난번 프레지역처럼 이곳 람푼지역에서의 첫째 날도 여전히 제게 피곤함을 안겨주네요. 하지만 제 피곤함을 이기는 것은 새로움과 감사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 람푼지역의 라오빳꺼이 스쿨에서 만난 친절한 선생님들과 지역사회 주민 분들, 그리고 학생들이 한 마음이 되어 11명의 우리팀원들을 반겨줌에 어찌나 감사한지요. ^^
사실, 아직은 프레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조금은 그립지만 3개월 후 이곳에서 활동하게 될 저인지라 이곳 아이들 역시도 제게 수많은 배움을 안겨다 줄 것이기에 후회 없는 시간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랑을 배풀어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숙소에 있어 드디어 홈스테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닌 할머니와 3살 박이 손자 나윈이 살고있는 집인데요, 부모님은 도시에서 살고 계시더라구요. 적적한 집에 저랑 선구언니, 유정언니, 화진언니 이렇게 4명이 이곳 가정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고팀장님 말로는 이번 주 홈스테이를 통해 두달 후 어떤 방식으로 홈스테이를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던데, 첫째 날인 지금 당장은 이곳 현지 가정생활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 자상한 할머니와 귀여운 손자가 있는 이곳 집이 은근히 매력적이거든요 :)
첫째날의 밤이 어느덧 저물어 가네요.
4일간의 짧지만 긴 활동이 기대되는 이곳 람푼지역. ^^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람푼에서의 에세이_0909
창밖에는 천둥번개가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곳 태국은 시시때때로 비가 내리지만
실내생활을 하는 덕에 사실 큰 불편함은 없어요 :)
오늘 드디어 람푼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여전히 제게행복한 시간들입니다. ^^ 수업을 진행할 때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제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니깐요 ^^ 너무나 행복한 수업시간입니다. :)
이와 더불어 이곳 라오빳꺼이의 선생님들은 저를 무척이나 잘 챙겨주십니다. 어느 선생님의 딸이 저랑 똑같이 생겼다나요? ^^ 선생님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덕에 감사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수업은 6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교생85명인 이곳 초등학교에 6학년은 12명, 제가 맡은 아이들은 4명이었습니다.
매번 아이들과 함께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요,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곳 아이들과 한국어 수업도 진행하고, 쉬는 시간도 보내고, 다양한 게임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에요 :)똑똑한 이곳 아이들 덕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사실 어제의 피곤함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닌 할머니의 배려 덕분에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현지 음식들은 제게있어 작은 활력소가 되어주네요 ^^
어느덧 람푼에서의 둘쨋날의 밤에 저물어 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
람푼에서의 에세이 _0910
아침일찍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단상 위에 올라가 이곳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는데요. 태국은 한국인(까오리)에 대한 관심이 참 대단합니다. 그 덕분에 저의 작은 행실 하나하나에 더욱 조심하게 되는 이곳 활동입니다. 단상 위에서 제가 인사를 할 때에 꺄악! 소리를 질러주시던 고마운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ㅋㅋ
오전에는 중학교에서의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조금 힘든 수업이었어요. 머리가 굵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수업시간에 잘 따라하지 않아 조금 힘들었지만, 수업진행방식에 있어 한번 더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오전 수업이 끝난 후 학교식당에서 800원짜리 만찬이 날 무척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오후에는 이곳 아이들과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저녁에는 태국 팀이 함께하는 우리들의 캔들 나이트를 처음으로 진행하였습니다. :)
11명이서 함께한지 어느덧 3주가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던 우리들.
캔들나이트를 통해 11명 모두가 작지만 큰 나눔을 할 수 있었던,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 수있었던 작지만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
이곳 태국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3주가 지났습니다.
11명 모두가 하나되어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 혼자서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이기에 이곳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네요. 모두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은 제게 있어 다시는 오지 않을 무척이나 귀중한 시간입니다. :)
람푼에서의 에세이_0911
여지껏 한 클래스에 5명이 한팀이 되어 진행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저 스스로 4학년 13명의 아이들과 2시간 동안 처음으로 수업을 진행해보았습니다. 수업에서는 늘 그렇듯이 말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오늘 제가 진행했던 수업은 풀과 꽃을 이용한 합동 작품 만들기와 간단한 한국어 교육, 그리고 동요 배우기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곳의 4학년 아이들이 제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표현해줌에 있어서 어찌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시작과 동시에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서 무척이나 아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무렵에는 이곳 지역사회의 축제를 방문했습니다 ^^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곳 축제에서 한국인 대표로 인사도 했구요. 돼지잡기, 소싸움, local market등 도 구경하였습니다. 이곳이 그저 농촌사회라고만 생각했던 제 생각과는 달리, 이곳 사회가 무척 흥미로운 곳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87.5 이곳 지역사회의 라디오방송에도 출연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해외봉사단이 이곳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10여분의 짧은 출연시간이었지만 무척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방금 전 누군가 넌 popularity한 사람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만큼 이곳 람푼에서 너무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입니다. 그 사랑 덕분에 저 역시도 더 멋진 미소와 좋은 이미지로 보답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곳에서의 관심과 사랑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마지막날인 오늘밤도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프레에서의 이별이 다음의 사랑에 충실해야 함을 느끼게 해 준 덕분일까요.
이곳 람푼에서의 이별은 제게 많은 기쁨을 안겨다 주네요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간의 사랑이 있었기에 헤어짐에 마음 아파하고, 이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순수한 이들의 마음 덕분에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내가만난 이곳의 아이들이 같은 하늘아래. 각자의 위치와 자리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랄뿐입니다.
다시는 내 인생에 오지 않을 지금 이시간 이순간 그리고 과거의 그순간
순간 순간에 충실해야 함을 또 다시 느끼게 합니다.행복합니다.
첫 에세이라 그런지 많은 떨립니다.
자아성립이 제대로 되지 못한 기존의 제 모습에 있어 이곳에서 배우고 느끼는 점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기에, 수많은 이들에게 저의 나눔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곳에서의 삶을 짧은 글로 표현하기엔 느낀점이 너무 큰 귀하고 소중한 시간과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에세이를 읽어주신것에 대해 감사해요 ^^
다들 너무 많이 보고싶어요 :)활동중에 있어 많이 힘들겠지만 다들 힘내서 잘 생활하길 바래요 ^^
파이팅!! > <
- 수진 :) -
(09.12) 동티모르 딜리에서, 에세이 그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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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딜리팀 에세이
(2008.08.21~2008.09.10)
- 서영주 -
전통가옥 구조로 신을 모시는 사당 - 예전에는 사람도 같이 살았지만 지금은 그냥 신만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가축 축사 - 동물들이(특히 닭) 계단을 통해서 넘어간다.
정보도 없었던 만큼 기대도 되었던 동티모르에서의 합숙이 시작되었다.
다들 걱정이 많았던 우리 동티모르팀!!!
처음에 공항에 왔을 때 이곳은 다른 곳과 달랐다.
공항 건물부터 시작해서 일일이 손으로 수작업하는 공항직원들..
요즘 정보화 시대에 보기 힘든 모습이라 색다른 모습이었다.
“korea time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무감각한 시간개념”
처음 간사님들께서 우리를 만나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온다고 했나?’ 라고 긴가민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들을 기다리셨다고 하셨다. 그 말씀 중에 '안 오면 담에 오려나?' 하는 느긋한 모습이 보여 의아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바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는 느긋함.. 동티모르는 시간개념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한 예로 출근시간이 9시라면 9시까지 출근하는 사람은 갓 출근하는 외국인뿐..
10시나 11쯤이 되어야 모두다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출근을 제때하지 않아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점점 이곳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이해가 되어간다. 나또한 그들처럼 느긋해진다.
이처럼 동티모르는 시간 속에 얽매여 매일 짜여진 각본에 의해 차근차근 움직였던 이제까지의 우리의 생활 관념을 무너뜨렸다.
하루의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움직이는..
게을러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을 것이다.
“동티모르는 애매하다?”
딜리는 특별한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동티모르만의, 딜리만의 특징을 드러내지 않고 애매하다.
완전 숲과 어우러져 있는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나무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집이 듬성듬성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길거리에 쓰레기는 이곳저곳 아무데나 버려져있고 먼지마저 너무 많다.
건축양식도 일정하지 않고 다들 각기 제각각의 모습형태를 띄고 있다.
이것은 독립한 지 몇 년이 흐르지 않아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특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딜리만의 동티모르만의 특색이라고 한다.
티모르에 와서 이시바시 간사님과 티모르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그 도중에 ‘동티모르는 아시아 속의 라틴이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아무래도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 지배를 받아서인지 여러 가지 특색이 뒤섞여 애매한 것을 만든 듯싶다. 그래서 그것이 지금의 동티모르의 특색으로 띄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언어만큼이나 이곳 문화도 다양한 것 같았다.
나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은 수도가 띄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수도 딜리의 모습 특색이 곧 동티모르의 특색이 아닐까?!!
이 시점 나는 궁금한 게 있다.
시간이 흐르면 이곳은 이 애매한 특성이 자리를 잡아 애매한 특색으로 비췰지 아니면 내가 찾지 못한 보지 못한 동티모르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췰지 말이다.
언젠가는 동티모르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 동티모르만의 동티모르를 대표할 수 있는 특색이 보일 것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예쁜 바다”
이곳 바다는 정말 예쁘다!!
한 바다에서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도 바닷가 쪽에서 태어나 바다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동티모르의 바다는 오염이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고나 할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예쁜 바다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고 느낀 동티모르는 ‘애매하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그래서 여기서의 프로젝트도 우리가 생각하고 만들어 가야하는 것인가?
지금 내 인생도 ‘애매하다’라는 말이 어울렸다면
이곳에서 팀원들과 함께 작지만 하나하나씩 만들어서 이루어 나가 나의 정체성도 찾고 싶다!
[뉴스 클리핑-1]가진 자와 못 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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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li Weekly는 딜리의 주간지이다. 좋은 기사를 발췌하여 번역해서 올리는 방식으로 뉴스 클리핑의 일정 부분을 소화해 나갈 예정이다. 이 기사는 8월 말의 내용이다. 번역이기 때문에 내용이 다를 수도 있다. 너무 믿지 마시길...2008년 8월 21일, 목요일*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여전하다(사설)-동티모르가 독립한지 거의 10년이 되어 간다. 수도와 여타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선, 딜리는 명백하게 동티모르의 일부분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국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도시로 한계지어서가 아니라 국경을 경계로 기준을 잡고 고려하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수도 딜리 밖으로 20-30분만 나가면, 우리는 진짜 동티모르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티모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Metinaro 혹은 Tibar 표지판이 진짜 티모르로 들어가는 지점을 표시하고 있을 테다. 환영합니다! 동티모르의 인구는 대략 100만 명 정도이다. 딜리에 10만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지역에 90만 명이 12개로 나누어진 지방에 살고 있다. 지금은 딜리와 지방을 나누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어 비교해 볼 수 있겠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논해 보겠다. 음식에 대한 접근성, 깨끗한 물, 교통, 기본적인 의료 그리고 교육을 기본적인 요소들로 규정지을 수 있다. 다소 추상적인 것, 자유, 독립, 안전, 안정성, 정의 또는 지역 청사의 건물과 같은 것들은 논외로 하겠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굶주림은 이러한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니까.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한 가냘프게 보이는 고등학생이 나온 적이 있다. 선생님이 아파보인다고 말하자, 그 학생은 집에 음식이 하나도 없어 하루 종일 굶었다고 대답했다. 실제 상황이다. 동티모르 전역에 걸쳐 대부분 가계는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있다. 그나마도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이다. 생존에 가장 기초적인 음식은 건강한 몸과 건정한 정신에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일반적이다. 독립 후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대부분의 주민이 하루에 60센트, 한 달에 20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활을 꾸려 나간다. 이 돈으로 초라한 집과 음식을 마련해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약품과 옷 등을 사야한다. 중요한 점은 엄청나게 비싼 동티모르의 물가이다. 딜리는 지금 계속 커나가는 수도이다. 많은 차와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거리가 채워져 나가고 있다. 하지만 동티모르의 지방 지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딜리를 제외한 지역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때 딜리는 많을 것을 가지고 있다. 딜리는 여타 도시와 달리 특별하다. 주로 딜리에서 일하고 사는 4000명이 넘는 외국인이 수도에 살고 있다. 도시의 외국인은 하루에 150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반면 딜리를 제외한 지역은 하루 60센트이다. 이러한 차이는 외국인과 국내의 현지인 사이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예로, 외국인은 1.5달러로 신선한 우유를 살 수 있다면, 지방에서는 농축된 우유 캔만 살 수 있다. 그것도 살 돈이 있다면 그렇다. 외국인에서는 좋은 쌀을 구할 수 있는 반면, 지방에서는 오래되고 질이 낮은 쌀이 보통이다. 외국인은 자가용으로 거리를 달리지만, 지방은 만원 버스를 타야하거나 걸어야 한다. 외국인에서는 양질의 특허 받은 약을 구입할 수 있다면, 지방에서는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위조 약을 산다. 외국인은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살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파리가 꼬인 고기가 전부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질이다. 외국인은 질 좋은 제품을 살 수 있지만, 티모르인은 높은 가격의 질 낮은 제품을 산다. 아마도 이것이 시장 경제의 결과이리라. 모든 것을 가진 자(외국인), 대부분의 사람보다 더 가진 자(딜리의 사람들),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자(지방에 살고 있는 90만 명의 티모르인) 사이의 삶의 질의 불일치는 계속 되어오고 있다. 이것이 왜 우리의 관계와 국제사회에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이다. 어떻게 해야 독립된 티모르의 대다수의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인가? 과거의 10년 혹은 나라가 세워질 때와 달리 지금은 어떠한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 많은 인적 자원이 훈련되고 개발의 빛을 보지 못 했던 사람들이 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일을 할 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이라크의 경우, WFP은 1년 긴급 구호로 약 100만 명의 이라크 난민에게 1억 2천 6백만 달러의 비용을 지원했다. 1999년 이래, 약 40억 달러가 직간접적 원조로 동티모르에 쓰였고, 쓰여질 예정이다. WFP의 자료에 의하면, 10억 달러 이상이 10년 동안(1999-2008) 기본적인 요소들(음식, 옷, 교육, 의료)을 동티모르 주민에게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10억 달러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같은 목적으로 사용 될 것이고, 20억 달러는 그 10년 간 국가를 재건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것이라 한다. 이 돈은 잘 쓰여지고 있는 것일까?
[에세이-2]동남아 오리엔탈리즘 by 심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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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은 서방세계에서 동양을 보는 시각을 이야기한다. 동양을 서양과 구분해 덩어리로 취급하며 일방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부각되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근본적 가치가 아닌 피상적인 오리엔탈적 가치에만 관심을 갖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리엔트 중 하나인 한국에서도 동남아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중일은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극동아시아의 범주에 속하길 원하며, 동남아시아와 구분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바람은 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만든다. 개발도상국, 가난한 나라, 타락한 정부 관료와 타성적인 국민, 더운 나라 특유의 게으름 등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애초에 구분 짓기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원인보다 결과를 중요시 한다. 동티모르 역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원인이 사라져버리는 것에 있다. 서구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상대적으로 낮추거나 신비화하여 자신들의 합리성을 강조하려 했던 것에 비교해보면, 우리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리고 라온아띠는 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고 있을까. 이 곳 동티모르에서는 과거 우리가 경험했었던 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일을 다시금 볼 수 있다. 채 정비되지 않은 도로 시설, 학교 속의 군대 문화, 인맥, 지연이 그렇다. 또, 1999년 자치-독립 선거, 2002년 독립, 2006년 분쟁 등 치열한 21세기를 거친 마지막 독립국으로 여러 강대국의 영향력에 크게 좌지우지되고 있는 정세도 그러하다. 국가의 발전 정도는 다만 속도와 위치의 차이가 있다. 문화 역시 문화상대주의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시대에 우열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기준은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우리보다 느리면 게으른 것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곳에서 한국에서와 같은 속도로 일 한다면 과로로 쓰러지고 말 것이다. 친인척 공동체가 일반적인 문화에서 무조건적으로 인연과 지연을 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 부족한 학교와 교수 수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합당한가. 대안이 없는 비판은 욕설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대안은 피상적인 모습에서 나올 수 없다. 대안이라 함은 문제의 본질, 즉 이유를 알아야만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봉사나 자원활동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도 이러한 대안이 필요하다. 이유를 알아내고, 근본적인 대안을 찾는 것. 이것은 계몽적인 봉사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곧잘 행해지고 있는-혹 많은 선교사들이 하고 있는- 제 3세계 곳곳의 계몽적 봉사 활동 장소가 비판을 받곤 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은 호기심과 소일거리로 갖는 관심을 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어설픈 관심으로 편견과 왜곡을 만드느니 아예 관심을 끊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서로의 관계는 끊어질 수 없으며 더욱 굵게 이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동남아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애착과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을 통해 피상적 표피를 뚫고 진정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남은 기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테다.
(이곳 동티모르에서 4개월 남짓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결코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3주간 지내면서 봉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여러 편견과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많은 것을 생각하기에 한국의 일상을 벗어나 멀다면 먼 티모르 섬 어딘가에 있어본다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인 것 같다. 앞으로의 4개월의 시간이 그 너머의 긴 시간에 의미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