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4] 다양각색 두호 오빠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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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각색 두호 오빠 체험기
1.
로뚜뚜 클리닉 숙소에서
근육질 마리우와 함께
(친구로서의 누누)
2.
로뚜뚜 클리닉 숙소에서
마리우, 주니꼬와 함께...
저 선글라스 중에 하나는 거의 장난감...
(말라이:외국인, 으로서의 누누)
3.
로뚜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주시는
우리의 누누 선상님
(선생님으로서의 누누)
4.
커피 힐리 작업 중이신
동네 아주머니와 함께
(따끈한 이웃 청년으로서의 누누)
*말라리아와 싸우고 있는 누누에게 건투를 빌어주세요.
[Photo 3] 무아지경 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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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카메라 앞에서
오만가지 표정과 포즈에 능숙해져 가는
로뚜뚜 아띠 옹의 자아도취 무아지경 콜렉션
1, 2.
은정이랑 아띠랑, 로뚜뚜에서 비가 오는 날,
귀여운 판초 우의를 입고-
손에 든 건, 반찬이랑 밥을 담아 나르는 밥통/반찬통!
저기 밑에 보이는 천막은 부엌입니다.
부엌에 밥하는 거 도와주러 가는 장한 두 여인.
3.
미술 수업 준비하느라
수업 준비물을 열심히 자르고 계시는 아띠님.
쪼리자국이 날로 더 선명해지고 있더라는. (이 대목에서 H 패밀리, 모두 슬퍼해주시기를.)
4, 5.
다시 이어지는 스파이더맨.
(혹시 이 글을, 이 사진을 보시게 될 효정이 아버님,
아침에 끓여주신 아버님의 된장국은 정말이지 일품이었습니다.
꼭, 다시 뵙고 싶은 효정이 아버님! 센스 최고!
아버님이 전화를 해주시면, 저희 사메팀 모두가 즐겁답니다...^^*)
[Photo 2] 안주, 아띠, 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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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뚜뚜 마을의 클리닉(빌려 쓰다가, 이제는 쓰지 않기로 한) 숙소에서
나름, -_- 폼낸다고 폼낸 사진
2. 로뚜뚜에서 사메로 내려가는 길,
스파이더맨에 빠진 아띠의 자아도취 포즈
3.
가브라키 초등학교에서 사메 숙소로 내려오는 길,
안주랑 아반이의 셀카
안주는 은정이
아띠는 효정이
아반은 연지
[Photo 1] 로뚜뚜에서 사메 내려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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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위트로 구성된 사메팀
로뚜뚜에서 사메로 내려오는 길
두보 오빠가 찍었습니다.
본인은 셀카(...)
저희, 많이 보고싶죠? ㅋㅋㅋ
[에세이] 아순시온, 그 열 다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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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개월, 현지에서 어엿 4개월. 7월에 처음 만나 8월에 현지로 온 우리.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하루 종일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오전엔 밖으로 나가 함께 일을 한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도, 아니 이건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개념이다. ‘가깝다‘ 라는 말은 단순히 공간을 의미하는 물리적 개념을 넘어, 마치 내 분신처럼, 그림자처럼 온 하루를 함께 보내며 같은 곳을 본다. 어제 타쿰 시티에 있는 마트에 갔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난 이곳에서 4개월 동안 동네 슈퍼마켓조차도 혼자 가본 적이 없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시는 따따이(사무총장님)의 영향도 있지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우린 코앞에 구멍가게 조차도 항상 셋이 함께 갔을까.
part 2. 내부의 갈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섯과 셋은 확연하게 다르다.그래서 좋을 때가 있고, 그래서 나쁠 때도 있다.그리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를 때도 있다.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다섯일 때는 오늘 하루 나 하나 입 다물고 있어도 별 파장이 없었다. 그러나 셋일 때는, 누구 하나가 조용하면 그 날 하루는 우리 모두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누구 하나가 기운 없이 쳐져 있으면 어느 새 우리 셋이 나란히 물 먹은 솜이불 마냥 축 쳐져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그 날 하루 우리 팀 전체의 분위기가 바뀐다. 한명이 기침하면 다 같이 콜록콜록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그 팀에게 있어 차지하는 영향이 1/5에서 1/3 으로 커지면서 그 만큼 우리는 책임감도 함께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일일평가서를 작성하는 시간, 혹은 팀 회의를 하는 시간에 한 명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진행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그 시간엔 열심히 집중해야 한다. 설거지나 쓰레기가 가득 쌓이게 되면 그런 상황을 만든 것도, 처리하는 것도 너와 너 아니면 나다. 그래서 못 본척 슬쩍 미룰 수도 없다. 나 하나의 게으름과 이기심이 조금이라도 섞이게 되면 내가 미룬 그 몫이 다른 팀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전보다 좀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이어 해야겠다.왜 우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도 함께 다녔을까. 하여간 지지배들이란- 하고 쯔쯔 혀를 차며 보통 여자애들이 우르르 떼지어 다니는 것과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 셋의 성격을 살펴보자.23살 박초영, 22살 김지은, 강지혜. 처음엔 나이는 비슷한 데 어쩜 이렇게도 캐릭터가 다 다를 수가 있나 싶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성격을 선으로 나타내본다면 우리는 각자 다른 선 위에,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맨 끝에 서 있을게 분명했다. 물론 사람은 모두가 다 다르다.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관점, 성격, 취향, 생활패턴, 종교, 옷 입는 스타일, 남자 보는 눈까지 모든 게 다 달랐다. 혈액형도 초영 언니는 O형, 지혜는 A형, 나는 B형이다. 밖에서 보면 여자 셋이서 둥글게 별 탈없이 잘 살것 같겠지만, 슬프게도 우린 둥글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큰 공통점이 하나 있는 데 ‘무뚝뚝’ 하다는 것이다. 무슨 여자애들이 어찌나 애교 하나 없이 딱딱한지 흡사 ‘나무 토막’ 들 같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기운 내라고 위로하는 말,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애초에 안 배운 사람들처럼 달달한 종류의 말은 죽어도 입 밖으로 못 꺼낸다. 거기다 공교롭게도 우린 다 첫째이다. 첫째의 전형적인 성격을 다 갖춘 우리는 어렷을 적에 화장실도 혼자 다녔더랜다. (이건 여자애들 사이에선 파격적인 사실이다!)
첫째들이 그렇듯이 우리 언제나 강한 ‘척’ 한다. 안 힘든 척, 안 외로운 척, 안 슬픈 척, 상처받지 않은 척.옆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댄다. 그러나 그게 상대방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남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 시려워서. 하지만 괜찮은 척 한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다.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이 기껏해야 2 주정도 였다면 우린 아마 서로의 최고의 모습들만 봤을 것이다. 최대한 웃는 낯으로, 최대한 나의 장점을 부각해서, 가장 착해보이는 모습들로 각자 한껏 포장 했겠지만, 그런 상태로 6개월을 유지하기엔 우리의 연기 실력은 형편 없었다. 내숭 같은 건 집어 치운지 오래고, 10년 지기 친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최소한의 선마저훌쩍 넘어버리며 나의 본 모습을 솔직하게 다 드러냈다.
그런 과정 중 하나가, 싫은 것은 단호히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었다.우리가 이 곳에서,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도 지금의 시간들을 행복했다-하고 기억할 수 있으려면 자기가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 내서 최대한 마음에 담겨있는 섭섭한 감정들이 없도록 말이다.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만, 만일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좋다.”라고 했다면 그 말에 끝까지 책임을 지기로 했다. 설령 사실은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다.” 라고 대답을 했다면 끝까지 괜찮은 척 이라도 해야지 내 맘을 몰라준다며 상대방을 원망하는 것은 명백한 반칙이다.
“꼭 그걸 말로 해야 아니?” 라는 질문에 우리 팀의 대답은 “예스” 다. 그래서 미리 말하지 않았었나. 우린 뻣뻣하기 그지 없는 나무토막들이라고.
또한 아주 사소한 것에서 오는 감정들을 사소하다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갈등의 시발점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생기고, 생각 없이 툭 내뱉은 말 한 마디에 오래도록 상처입지만, 그게 너무 작은 사건에서 시작 된거라 섣불리 말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함께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다 소소한 것들인 것을- 그래서 우린 남김없이 말하기로 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느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 가슴속에 담겨 있는 것 모두 다다다!
- 자기가 먹고 난 빈 그릇은 개미 끓으니까 그때 그때 설거지 해줄래? - 세수하고 바가지에 있는 비눗물은 꼭 다 버리고 나와.- 저번에 내가 우물물 다 떴는데 아무도 몰라줘서 솔직히 섭섭했어.
놀랍게도 말하기 전까진 얹힌 것 마냥 답답하던 속이, 말이 입술을 타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 탁- 트이면서 후련해진다. 우린 이토록 작고 예민한 한낱 미물인가 보다. 그러나 미물이면 어떠하랴. 지금 마음이 편해졌으면 그걸로 됐다.
팀 빌딩 시간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특별한 자체 팀웍 세레모니가 하나 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지나치리만치 솔직한 대화들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작은 생채기들을 달래주기 위한 거라고나 할까. 우린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꼭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본다. 배를 깔고 바닥에 디비져서 과자 한 봉지씩을 옆에 끼고 쿠도 신이치의 활약을 보고 있자면 여기가 무릉도원이지 싶은 게 방금 전의 전쟁은 어느 새 옛날 일이 된다. 단언컨대, 우리 팀을 하나로 만들어 준 것은 절반의 솔직한 대화와 절반의 명탐정 코난 덕분이다.
센스 있게 매번 새로운 극장판을 다운받아 놓는 초영언니.센스 있게 항상 어디선가 과자를 들고 나타나는 지혜.
우리가 남자친구가 없어서 나무 토막이 된 건지, 나무 토막이어서 남자친구가 없는 건지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를 두고 항상 결론 없는 토론을 하지만, 어찌됐든 다행이다. 우리 중 하나가 낭창낭창 애교 덩어리였다면 그 역시 감당 안됐을 텐데 셋 다 똑같아서 말이다.
표현은 못해도 다들 알고는 있단 말이지. (또 이럴때 보면 캐여시들 같기도 하다)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요 앞 구멍가게도 같이 가는 이유가 아닐까.내가 발목을 다쳐 다바오 시티에 있는 큰 병원을 가게 되었는 데 2시간이 넘는 거리임에도불구하고 같이 와 준 언니와 지혜. 물론 누구 하나 옆에서 살갑게 부축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병원 로비에 있는 까페에서도 따로 앉는 게 편하다며 각자 테이블을 잡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마저도 자연스럽다. 우리도 이제 낭창낭창 해질 꼬예여......* >.< *
[뉴스 클리핑] 인종전시장 말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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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번화가 부킷빈탕은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히잡을 쓴 말레이 여성, 검은 차도르로 온몸을 가린 중동 여성, 터번을 두른 인도 남성, 중국인, 유럽인 등 온갖 인종을 만난다. 현지인들은 이런 풍경에 익숙해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멜팅 포트의 중심지’로 불린다. 실제 말레이시아 인구분포는 말레이계 56%, 중국계 24%, 인도계 8%, 유럽계 등 기타 12% 등으로 복잡하다. 매년 5% 이상의 견고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말레이시아의 원동력을 민족 화합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갈등 요소가 다양함의 활력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복잡한 사정도 있다. 말레이시아 민족통합 정책의 핵심은 경제적 약자인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부미푸트라’다. 자윰 자완 푸트라말레이시아대 교수는 “1969년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유혈폭동 이후 부미푸트라가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며 “중국계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말레이계의 불만을 줄이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기업체에는 말레이계 소유 지분을 30% 이상 보장해야 한다. 반면 정치권 및 공직에는 말레이계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수 말레이계의 불만이 잦아들면서 민족 간에 안정된 관계가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말레이계 우대가 계속되면서 소수민족인 중국 인도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겼던 부모 세대들은 차별을 평화와 안정의 대가로 받아들였지만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인도계인 대학생 아마르지트 싱(25) 씨는 “여기서 태어난 엄연한 시민인데 왜 2류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함께 어울려 살고 있지만 결혼을 통한 민족 간 결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도 중국계는 중국 학교에, 말레이계는 이슬람 학교에 다녀 아직은 서로 고립돼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이에 따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족 간의 ‘사회 협약’을 새로 작성해야 한다는 논의도 거세다. 출처:데일리 메일
[뉴스 클리핑] #7. Raonatti Concert in Asuncion YMCA C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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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 아순시온 YMCA에서는 지난 1년간의 YMCA의 활동을 보고하고, 1년을 정리하는 행사인 Corporate Meeting이 있었다. "Movement Strengthening in Fulfillment of the YMCA Misson"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미팅은 YMCA의 스텝들, 보드 멤버들, Raonatti 단원들, YMCA의 활동에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이루어 졌다.
보드 멤버 미팅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현 이사단 이날 행사에서는 오전에는 올해 YMCA의 활동 성과 보고와,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계획을 제시하고, 재정 보고를 하고 정화 의식을 하였으며, 오후에는 내년의 새로운 YMCA 이사진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특별히 라온아띠 단원들의 기타 공연이 있었다. 현지 동요인 'Bahay Kubo'에서 부터 팝송 'Blowing in the wind', 캐롤 'Rudolph TheRed Nosed Reindeer', 한국 가요 ‘바위섬’까지 이어지는 라온아띠 단원들의 특별 공연은 현지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점심시간, 라온아띠 팀의 특별 공연!! 사실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기타를 잡아보았다는 단원들은 이날 공연직전 초조함을 드러내며 걱정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짧은 연습기간과 전문적인 연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연은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이사회의 선출이 이루어 지고 있다. Mrs. Monteroso 여사가 이날의 개표 위원을 맡아 주셨다. 이날 선거에서는 전년도의 왕성한 활동으로 다수의 이사진이 재선 되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YMCA스텝 Toto의 부친인 Manuel Puyong Sr.이였다. 그는 거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그의 왕성한 활동과 푸근한 인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당선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Toto 내년도 이사회 회장님의 소견 발표 언제나 온갖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릿촌!!!
[SUN 의 에세이] 우리집 호스트 패밀리 “매닌 할머니와 나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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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호스트 패밀리 “매닌 할머니와 나윈” 태국팀은 알려진바와 같이 람푼과 프레 두팀이 한팀이 되어 활동중이다. 11월부터는 다섯명씩 북부 시골마을인 람푼과 프레로 나뉘어져 두달여 정도를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람푼팀은 세집으로 나뉘어져 호스트 가족들과 지내게 되었는데, 나와 수진이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집에서 호스트 가족과 지내게 되었다. 우리집 호스트 가족은 매닌 할머니와 네살배기 어린 손자 나윈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나와 동갑이고, 아빠가 2년전에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 태국에선 군대모집을 제비뽑기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뽑기에서 검은색이 나오면 군대복무를 해야하고, 빨간색이 나오면 군대 면제가 된다고한다.) 그 기간에 맞추어 아이의 엄마는 돈을 벌기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일을하러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외할머니와 아이만이 남아 집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는 서른의 이른 나이에 남편을 여의시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오셨다고 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옷을 매우 잘만드시는데, 미싱으로 생계를 이어오셨고, 지금도 여전히 일을하고 계신다. 할머니가 만드신 옷을 봐도 알 수 있고, 여타의 도움 없이 미싱만으로 여태껏 홀로 생활을 유지하신 것만봐도 할머니의 미싱 솜씨는 가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나뵈었을 때 사연을 듣고 봐서 그런지 어딘가 외로워보이셨다. 긴긴 세월을 라오빠꺼이 마을에서 보내신 할머니에게 마을은 어쩌면 고향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너무 어렸을 적에 엄마와 떨어져서 그런지 아무래도 엄마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에게 가끔 전화가 올때마다, 엄마 전화를 피하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우리 할머니는 또한 요리를 매우 잘하신다. 태국에 와서 한동안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 무척 고생했었는데이곳에 와서 할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고 지내면서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할머니와 나윈과 친해지기 위해 조금 알고있는 태국어를 총 동원해 대화도 시도하고,안마도 해드리고, 함께 둘러앉아 티비를 보기도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서로 무척이나 가까워 짐을 느낀다. 할머니는 마을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하시는 걸 좋아한다. " 이 아이들은 한국의 내 딸들이야 " 할머니는 별로 잘나지도 않는 우리를 이렇게 자랑스럽게 소개하시곤 한다. 할머니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며 이곳저곳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셨던 마을사람들이 이제 조금은 친숙해짐을 느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시곤 한다. 가끔은 마을사람들이 물어보신다. " 한국가면 또 언제 올꺼냐고 " 그럼 나는 장난스럽게 "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꼭 다시 오겠노라고" 말씀드리곤 하지만 우리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음을 확인해야 함이 어쩐지 먹먹하다. 우리는 곧 이별을 맞이해야한다.(12월 말까지 마을에 거주) 호스트 가족들과 라오빳꺼이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물론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우리에게 맺어진 관계의 끈은 삶 속에서 계속 묻어나고 이어질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우리에게 이별이란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헤어짐의 시간을 떠올릴 때 마다 코 끝이 시립고, 먹먹해진다. 아무래도 서로에게 두터운 정이 쌓여가고, 깊은 애정이 녹아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는 이별을 미리 준비해 두고 싶다. 어쩐지 슬프지만은 않은 새로운 이별을 맞이해보고 싶은 생각이든다. 아름다운 이별, 행복한 이별을 이들과 함께 만들어보고싶다. 아직은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맞이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물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들이 우리가 서로 함께 성장하게 하고 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들이삶에 묻어나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에겐 영원한 단절의 이별이 아닌 영원히 지속가능한 만남을 이어가지 않을 까 생각한다. 서로 함께 함을 통해 얻은 행복, 더불어 삶을 통해 얻은 벅찬 감동들을 우리가 사는동안 기억하고, 만나고, 이어가리라 희망한다. - 라오빠꺼이에서 선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