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파티 메인을 담당한 귀염둥이 태국팀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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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은 무지개먹! 은 안개다우! 는 별!맥! 은 구름!폰! 은 비!
여기는 산캄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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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 에어콘사용하지 맙시다!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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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4기 귀국보고_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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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4기, 귀국보고서 <태국>4기 태국팀이 2월 7일, 모든 현지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5개월 간의 자원활동을 마치고 아시아의 좋은 친구들이 되어 돌아온 태국팀! 그들의 5개월의 활동을 정리하는 귀국보고서입니다.
★ 태국팀의 12월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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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4기 태국팀의 12월 보고서입니다^ㅡ^Click!
개인에세이,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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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아띠? 태국에 오기 전, 가족이나 친구들이 태국에 왜 가느냐고 물었을 때, 늘 “해외봉사”하러 간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사실 이런 자원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해외봉사, 특히 대학생 해외봉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었던 장면들은 기업이름이나 대한민국이 두드러지는 “봉사”팀이 철저히 시혜적인 봉사를 마치고 태권도쇼나 노바디를 선보이는 장면, 혹은 문화교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지만 결국 공연 교류로 그치고 마는 장면들이다. 물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순수하게 우리문화를 알리고픈 사람들이 현장에서 노력하는 동안 책상머리에 앉아서 한 생각들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라온아띠를 알게 되었다. 약간(?)의 도피성 이유도 있었지만 앞의 이런 생각들이 다른 자원활동 프로그램이 아닌, 라온아띠에 지원하게끔 하는 큰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곳의 고민 그렇게 태국에 온지 3개월이 지났다. 3개월 동안, 태국에서의 주된 활동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을 소개하는 활동들이었다. 9월, 람푼과 싼캄팽의 고등학교를 찾아가 30분정도의 한국소개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물론 활동의 목표자체가 “한국소개”였고, 짧은 수업을 계기로 학생들이 비단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활동들을 끝내고 나서 예전 국내에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런 한국홍보를 통해서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런 식의 문화교류보다, 혹은 단편적인 1-2회의 한국어수업보다 환경캠페인이나 빈곤가정의 교육문제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들이 10월 내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10월에는 빈곤지역 환자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면서, 역시 문화교류보다 이런 활동들이 그들의 삶에도, 우리의 성장에도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 고민이 더 심해지기도 했다. 한국에 계신 간사님과 이런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런 한국 알리기 활동에서 한계점이 느껴진다고. 단순한 문화교류를 넘어서, 그를 통해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또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 다름 속에서도 공유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교류하고 싶다고. 한복이나 원더걸스로 먼저 친해지겠지만, 후에는 빈곤에 대한 고민들, 북한이나 버마사람들에 대한 고민들, 환경에 대한 고민들부터, 소소한 일상,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들까지 교류해 내야하지 않는지. 그래야만 서로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알 수 있고, 그 배움을 다시 실천에 반영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지. 투정에 가까운 이 고민 상담에 간사님은,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현장에 있는 자원활동가들이 그런 시도를 통해서 점점 현지의 스텝들과 마을 사람들의 인식의 전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란다. 기관 대 기관, 국가 대 국가가 움직이는 것은 늘 상처를 입히기 쉽고, 더디기 마련이거든!”이라고 답해주셨다. 이런 답변을 받고 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사실, 태국활동에서 이런 고민을 할 때, 나는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정작 현지YMCA가 우리에게 그런 식의 다소 단편적인 문화교류활동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실제로 활동 초반에, 한복을 가져오지 않은 문제로 팀원들이 꽤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문화교류에 대한 기대가 있긴 했지만) 간사님의 답처럼, 내가 혹은 우리 팀이 주체적으로 그런 시도를 해야 하는데, 그저 “고민”만 잔뜩 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를 이야기 하다 마침 11월, 람팡에서 20여명의 대학생들과 라온아띠를 소개하는 활동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라온아띠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고민하는 주제인 아시아에 대해서 같은 아시안인 대학생들과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3시간여 진행된 활동 동안, 우선 태국대학생들과 함께 아시아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에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에 대해 표현해보는 활동을 가졌다. 그리고 12월, 치앙마이의 메조대학에서 또 한 번, 관광학 전공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다. 학교 측에서 관광학 전공이니 만큼, 관광위주로 한국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우리는 이에 단순히 한국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태국사람들이 영화나 TV에서 본 피상적이고 소비지향적인 한국이 아닌, 정말 한국인이 태국인과 공유하고 싶은 한국관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더불어 태국학생들이 생각하는, 외국인과 공유하고 싶은 진짜 태국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단순히 푸켓, 타이마사지, 방콕거리 이런 것들이 아닌) 이 두 활동의 결과가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니다. 활동 자체는 정말 활기차고 재미있게 진행됐지만, 우리가 목표로 했던 것에 가기에는 몇 가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짧은 시간동안 진행했기 때문에 시간적인 제약이 있었고, 우리는 태국어가, 학생들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언어의 제약도 분명 있었다. 또한, 현지스텝에게 미리 우리 목표에 대해 의논하지 않았고, 이에 진행을 하던 스텝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흥미 위주로 해야 하다 보니 우리의 관점을 벗어나게 되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9,10월 내내 고민하던, 특히 내가 실천하려고 하진 않고 이 곳 시스템에 대해서 투정부리던 날들에 비하면 분명 한 걸음 더 나갔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화교류활동에서보다 홈스테이에서 고민의 답에 더 다가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홈스테이 마을에 있으면, 학교를 마치고 자기 전 까지 가족과 함께 있기 때문에 상상외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매일 하게 된다. 탁신이나 김정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왜 태국엔 떨어져 사는 가족이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소소하게 저녁메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우리 엄마는 락매니아다...)아무튼,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어쩌면 나도 모르게 서로를 알아가고 교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추억+7kg 5개월은 긴 시간이 아니고, 특히 태국팀의 스케쥴은 엄청나게 다양한 활동들을 병행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이뤄내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장기간 활동하는 자원활동가나 단체에서도 분명 이 고민들이 쉬운 고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고민들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5개월이 다 지나고 나서도 쉽게 해결될 고민은 아니겠지만. 두서없이 써 내려 갔는데, 실제로 지금 머릿속이 두서가 없다. 사실, 이 고민들 말고도, 일상이야기, 가족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 등등도 잔뜩 써놨다가 지나치게 두서가 없길래 지워버렸다. 물론 이렇게 고민들만 던져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추억과, 사진과, 친구들과, 몸무게+7kg정도도 던져주는 게 라온아띠, 특히 태국팀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개인에세이,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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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기 나는 지금 태국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 3개월을 살면서 24년 동안 살아왔던 한국, 가족, 친구, 먹고 자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고 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온전히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나도 행복하고 함께 하는 사람도 행복해 진다는 것, 반대로 온갖 선입견 속에 갇혀 스스로 문을 닫아 버리면 모든 것이 힘들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나아가 지금 이순간 태국에서의 생활은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더 큰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던 나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조금 더 크게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눈과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을 돌아 보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물론 아직 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을 거듭하며 한국에서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나에게 ‘지금까지 너무 인생을 안주하며 살았구나’ 반성을 하기도 하고, 지금 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며 물음표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정해진 답은 없다. 하지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라온아띠를 만나기 전보다는 인생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라온아띠 를 만난 건 내인생의 ‘행운’이었고, 태국에서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조금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라온아띠라는 공동체 10월 우리 팀 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우린 가족이잖아’ 였다. 우리가 일에 지쳐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맨 처음 우겸 오빠 가 외쳤던 말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마치 주문을 외우듯 내뱉었던 그 말로 인해 우리 팀은 전보다 조금 더 행복을 느끼고, 조금씩 서로 에게 마음을 열고 가족이 되고 있다. 나아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최대한 많이 나누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피드백을 통해 진정성 있는 대화가 오고 가면서 마음의 문도 활짝 열고 더 많이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지금은 먼 과거 이야기인 것처럼 웃으면서 넘어가는 모든 것들이 그때, 그 순간은 왜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는지 모르겠지만…^^ 피드백 과정을 통해서 더 많이 가까워 지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아졌다. 생각해보면 진짜 가족도 마냥 행복하고 예쁘기만 한 가족은 없지 않은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이끌어 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족’ 이라는 공동체가 형성 되는 것 같다. 라온아띠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각자가 느끼는 생각과 마음은 다르겠지만 그런 점들을 소통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다섯 명 이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우리 다섯 명 은 태국 에서 함께 지지고 볶으며 잘~살고 있다. 우리 팀 의 분위기 메이커 이자 친구 같은 김우겸 오빠, 프안 디 찡찡, 진짜 친구가 되어 가고 있는 조준, 듬직하고 믿음직한 윤경, 이제는 살살 애교도 피면서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현주. 지금 이순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고 행복하다 : ) 우리, 행복하자 몇 주전 홈스테이 마을에서 보고서 작성을 하면서 우리끼리 웃으면서 던졌던 이야기 주제 ‘다시 라온아띠 단원으로 뽑히면 어느 나라로 가고 싶어?’ 왜 그런 주제가 불쑥 튀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질문에 우리 다섯 명 의 대답은 하나였다. ‘태국!’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1200원이면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고,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2달여의 홈스테이 를 통해 태국의 엄마, 아빠, 동생이 생겼고, 5개월 이란 시간 동안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서의 생활은 의미 있는 시간의 연속이다. 3개월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정신 없이 살다 보니 벌써 2010년의 마지막 달,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2달여 남짓.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 동안 이곳에서 나는 ‘좀 열심히, 좀 순하게, 비교하지 말고 그냥 행복하자’ 를 되새길 것 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가슴 뛰는 순간들, 지금보다 더 온전히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면서 진짜 친구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참 행복했다.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행복할 것이다.
개인에세이,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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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한국인이라고 같을 것도, 외국인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이 곳에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간사님의 한 달 동안의 소감을 말해달라는 말에 불쑥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대부분은 외국인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굳이 한국인이라고 같을 것도 없다는 말이었다. 라온아띠 4기 태국 팀이라는 이름으로 뽑혀 함께 6개월을 살게 된 사람들, 처음 만난 그 날부터 국내훈련으로 인해 한 달여를 함께 살았고 지금 이 곳 태국에서 함께 산 기간도 3개월이 넘어간다. 처음,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한다는 사실에 '아, 이 사람들과는 정말 가족 같아 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함께 살게 된 우리들 사이에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맞지 않는 부분도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처음에 가졌던 생각은 차차 희미해졌다. 그리고 희미해진 그 생각은 '내가 이 사람들과 5개월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 곳 태국에 정말 우리 다섯 명만 남았다. 문화, 풍경, 언어 정말 모든 게 다른 이 나라에 함께 온, 같은 문화 같은 풍경에서 살았던 그리고 무엇보다 속 시원하게 말이 통하는 유일한 사람들. 이런 상황은 내게 이 생각을 가지게 했던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야. 다름 너머의 이해 사실은 전혀 같을 수가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낯선 곳에 온다는 생각 때문에 되려 우리를 같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9월,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오해로 인해 한 달 동안 두 번의 큰 피드백을 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같을 수가 없는 사람이잖아.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모든 면이 마음에 들고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다. 23년간 다르게 살았던 우리가 만난 지 두 달 만에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지. 심지어 23년간 함께 살았던 가족마저도 다른 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많은데.' 이 생각과 함께 우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르다. 정말 많이 다르다. 하지만 '다름'은 정말 말 그대로 다른 것뿐, 누군가 잘못 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다. 내게 그들의 다름이 느껴지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나의 다름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다름'을 인식하니 '이해'가 왔다. 전보다 조금 더 너그럽게, 부드럽게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벌써, 이렇게 빨리, 어느새 서로 알게 된 지 다섯 달. 여전히 우리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꽤나 즐겁게 지내고 있다. 물론 모든 면이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그리고 닮아가면서 이 곳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다시 처음의 생각이 조금씩 떠오른다. 이 사람들과 가족 같아 지겠구나, 라는 생각. 모든 면이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점점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종종 여전한 다름에 서로 기분이 상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아주 기나긴 피드백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조금씩 더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결국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나는 서로의 다름을 느끼고, 우리로 인해 나의 다름을 깨달으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이 달라짐은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다름은 다만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다름은 우리에게도, 우리와 태국 사람들에게도, 태국 사람뿐만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만날 모두에게도 존재한다는 것. 우리 모두는 다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르지 않다.